최근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수련환경 개선 선포식이 무산됐다. 그 이유야 어떻든 간에 전공의들의 지나친 근무일정, 열악한 수련 환경, 낮은 당직비 등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쟁점이 되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밀린 당직비 등을 지급해 달라는 전공의들의 요구에 대해 그렇다면 마지막 연차 때 시험공부를 이유로 근무를 하지 않은 시간에 대해 임금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의학교육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갈등은 참으로 보기에 딱한 것이다. 물론 병원에서는 전공의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쓸 수 있는 노동력으로 보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공의 수련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전문의로서 필요한 역량을 수련’시키는 것이 맞다.

수련은 교육이며, 교육은 적절한 교육과정과 평가체계가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전문의 시험은 근본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학부에서의 기본의학교육도 마찬가지지만 국가시험을 위해 본과 4학년 말은 거의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어떤 학교들은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보다는 오로지 시험 합격률을 높일 목적으로 집중적인 문제풀이식 교육을 하거나 학생들이 시험공부를 하게끔 방치하기도 한다. 이는 전문의 시험으로까지 이어져 시험 준비를 이유로 병원을 떠나 별도의 합숙 등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시험의 본질은 평가(evaluation)이다. 주지하듯이 평가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전문의 자격과 같은 자격(qualification)에 대한 평가는 단지 지필시험의 점수를 얼마나 받았는지에 달려있지 않다. 여기서 벌어지는 한 가지 우스운 일 중 하나가 ‘전문의 시험에서 수석’을 하였다는 것이다.

전문의 시험 수석이, 과연 그가 가장 우수한 의사임을 보증하는가? 그러므로 전문의 시험은 예전의 과거시험이나 학력고사와 같은 석차를 매기는 평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해당 의사가 과연 전문의로서 필요한 역량과 자질을 갖추었는가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는 한 번의 시험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통해 여러 교수진들의 복합적인 평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지필시험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여러 요소 중의 하나로 고려되어야 하지 그것이 합격/불합격을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즉 전문의 시험은 해당 의사가 수련 과정에서 어떤 교육적 경험을 쌓았는가, 여러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가, 필요한 지식과 수기를 갖추었는가를 일정 주기로 파악하면 되며,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하면 그에 대해 필요한 만큼의 보충을 지시하면 된다. 일 년에 한 번 당락을 가르는 대입 수능시험과 같은 시험이 아니라는 말이다.

전문의 자격을 이렇게 평가한다면 해당 수련병원은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갖추고 이를 운영하며, 교육적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사실, 이런 인프라가 없으면 수련병원이 될 수 없는 것이 옳다. 전문의 시험이 일회의 평가가 아니라 상시적인 평가가 되면 시험 준비를 위해 근무를 쉰다는 말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공의를 일꾼이 아닌 피교육자로 여겨야 수련의 질이 올라가고, 이들을 저렴한 노동인력으로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갖추지 않고, 필요한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병원은 수련병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갈등이 있을 때는 무엇보다 원칙으로 돌아가 그 문제를 풀려고 해야 한다. 전공의 수련의 본질은 무엇인가, 또는 전문의 시험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 답이 쉽게 나온다. 수련병원의 지정이 병원의 이익이 아니라 무거운 사회적 책임감으로 다가오도록 제도를 만들 때 비로소 이러한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단초가 열릴 것이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