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6월 김모(41) 충남대의대 비뇨기과 교수가, 이듬해 3월 경기 부천에서는 비뇨기과의원의 박모(68) 원장이 각각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의료현장에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의료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십수년 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얼마전 의료인폭행 가중처벌법을 포함한 의료법개정안이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지만, 지난 28일 열린 전체회의에는 상정되지 않았다. 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해 가중처벌이 바람직하다는 의료계의 입장과,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형법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환자ㆍ시민단체의 대립이 팽팽하다.

▽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
환자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는 이유와, 형법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을 내세워 가중처벌법에 반대를 하고 있다.

경실련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환자단체연합회 등은 지난 8일 성명을 통해 “예방효과보다는 의료인을 폭행, 협박한 환자나 환자가족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려는 응보적 효과일색”이라면서 “의료법 개정안은 또 의료인에 대한 폭행, 협박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의료법 개정안에 의하면 직무집행중인 대통령의 멱살을 잡았을 때보다 병원에서 의사의 멱살을 잡았을 때 더 중한 처벌을 받는다”면서 “가장 큰 문제점은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우리나라 모든 환자나 환자가족들을 잠재적 중범죄자로 만든다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먼저 의사의 불친절, 불충분한 설명, 반말, 면담 회피, 의료사고 등 환자의 불만이나 민원사항을 해결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 25일에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의료법 개정안이 상정되는 것을 저지하며, 의료법 개정안을 반드시 폐기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 “의료 특수성 고려, 가중처벌 바람직”
의료계는 병원에서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 폭행이 빈번히 이뤄지고 있으며, 생명을 다루는 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가중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10일 전공의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지금까지 응급실과 각 병동에서 일어난 폭행과 시비는 의료인은 물론 병원 내 환자와 보호자를 위협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의료인의 안전이 법적으로 보호된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대전협은 “일부 시민단체는 법안의 긍정성을 외면한 채 이 법안을 어길 경우 5년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는 면만 부각시켜 마치 환자 권리를 억압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같은날 성명을 통해 “의사의 80%, 간호사의 85.5%, 의료기사의 71.0%가 폭력을 경험했다”면서 “의사폭행시 가중처벌법안은 단순히 의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의협은 “‘‘오죽하면 환자가 의사를 때렸겠느냐, 오히려 때린 환자를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민단체의 주장은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것”이라고 반박하며 “동 법률안을 통해 안정적인 진료환경이 조성된다면 최종적인 수혜자는 단지 의사에 머무르지 않고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대다수의 시민과 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도 지난 16일 성명을 통해 “어떠한 이유에도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으며 진정 늑장처치, 불친절한 태도 등이 원인이라면 의사와 환자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노력을 통해 해결돼야 하는 것일 뿐, 폭력이 정당화 될 근거는 없다”라며 시민단체의 주장을 비판했다.

▽ 의료인 가중처벌법, 결국 환자 위한 것
의료법 개정안에 따르면 가중처벌 대상은 의사 뿐 의료인과 의료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간호사나 행정인력 등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유독 의사만 내세우며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법안의 발의취지는 의사만을 보호하는 법이 아닌, 의료현장에서 의료인들을 보호하고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 결국엔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를 위해 안정적인 의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의료인이 폭행당할 경우에는 다른 환자의 상태에 대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

특히 응급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폭력행위에 대해 전공의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현행 의료법 제12조 제2항에는 의료기관의 시설 등에 폭력을 행사한 경우에 한해 처벌할 뿐, 의료인에 대한 폭력행사에 대해서는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응급실에서는 으레 일어나는 일 아니냐’는 반응을 보인다.

해당법안을 대표발의한 전현희 의원실의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법안은 일반국민들과 환자들을 위해 발의한 것인데 여론이 좋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폭행을 당한 의사들이 다른 환자의 진료에 차질이 생겼다는 사례를 많이 들어 다른 환자들에게 선의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겠다고 우려했다”며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또 시민단체의 반발에 대해서도 의사들이 폭행 당하지 않게 되거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게 되는 것은 반사이익일 뿐, 법안발의를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환자들의 안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애초 시민단체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인증제 등 다른 법안의 경우 환우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법안 소위장까지 와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데, 의료법 개정안 논의 당시에는 법안심사소위시 까지 그런 의견을 준 적이 없다가 갑자기 성명 등을 통해 반대의견을 표명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환자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며 “환자들을 위해서 낸 법안인데, 그들이 싫다면 굳이 강행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상정 안됐지만 법안소위도 통과됐고, 위원회에서 다른 의료법 조문과 같이 대안으로 꾸몄기 때문에 우리 맘대로 철회할 수는 없고, 추후에라도 상정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민감한 사안이니만큼 논의를 계속하고 여론수렴 과정을 겪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법은 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닌, 환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법안임에 분명해 보인다. 

극단적인 상황과 비약을 내세워 해당법안에 강력히 반발하며, 결국 6월국회 통과를 무산시킨 환자단체나 시민단체들은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된 의료인에게 진료받는 환자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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