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기도 전에 공약 말 바꾸기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 논란은 크게 4대 중증질환 국가 전액보장과 기초노령연금 지급 등 주요 복지공약 2개를 중심으로 전개돼 환자 및 노인단체의 비판이 거세다. 인수위는 거듭되는 언론보도에 이례적으로 해명자료까지 배포했지만, ‘말 장난’에 불과하다는 반응만 이어졌다. 특히 박 당선인이 항상 ‘신뢰’와 ‘약속의 정치’를 강조해온 만큼, 취임도 전에 휩싸인 ‘말 바꾸기’ 논란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수위와 각 단체들의 입장 표명을 중심으로 그간의 논란 진행상황을 짚어봤다.

사진=인수위 홈페이지
사진=인수위 홈페이지

▽4대중증질환 전액보장, 수정론? 
문제가 되고 있는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의 정확한 내용은 무엇일까.

박 당선인이 후보자 시절 발간한 공약집을 그대로 복기해보면, “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질환 등 4대 중증질환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한 총 진료비를 건강보험으로 급여 추진”과, “현재 75% 수준인 4대 중증질환의 보장률(비급여부문 포함)을 2013년 85%, 2015년 95%, 2016년 100%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로 요약된다.

당시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이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지적했지만, 새누리당과 박 당선인은 공약에 대한 의지와 이행 가능성을 강하게 표명했고 해당 공약은 여당의 보건의료 공약 중 핵심으로 꼽히며 전면 대두됐다.

하지만 당선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재원 확보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인수위에서 해당 공약 수정 가능성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달 2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업무보고에서 “4대 중증질환의 시행시기를 당초 계획보다 1년 늦추고 비급여의 급여전환과 함께 급여기준을 확대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보장성의 구체적인 범위나 항목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구했다.

▽5일 언론보도 ‘기폭제’
지난 5일 연합뉴스는 “인수위에 따르면, 4대 중증질환에 대 한 정부 지원을 대폭 강화하되 환자 본인 부담을 전액 면제하지는 않는 쪽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신 정부는 2016년까지 4대 중증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보장 수준을 강화하되,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은 폐지하지는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

다만 본인부담금의 경우 상한액을 최소 200만원, 최대 400만원인 것을 소득수준을 반영해 최소 50만원, 최대 500만원으로 하기로 했고, 소득이 높을 경우 더 많은 부담금을 물리되 저소득층에 대해선 본인부담금을 대폭 줄이겠다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인수위는 건강보험의 모럴 해저드 방지를 위해 선택진료비(특진료), 상급병실료 등을 현행과 같이 환자 본인 부담인 비급여로 유지하고, 간병비도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해 논란의 불씨가 됐다.

이에 따라 4대 중증질환에 대한 정부 지원은 고가 표적항암치료제 등 약제, 치료행위, 검사 등 의학적으로 필수적이라고 평가되는 영역으로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전망했다.

▽인수위, “애초부터 공약에 포함 안 됐으니 수정된 것 아냐”
이 같은 보도 후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 6일 인수위는 이례적으로 ‘해명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불통’이라는 지적을 받으며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던 인수위가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선 것.

인수위는 해명자료를 통해 “4대 중증질환 관련 공약을 수정한다는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현재 인수위는 공약 취지에 맞게 서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드리는 4대 중증질환 공약이행계획을 수립 중이다.”고 발표했다.

인수위는 특히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3대 비급여는 애초부터 박 후보의 대선공약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수위는 “공약의 취지는 질병 치료에 꼭 필요한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보장하는데 있다.”면서, “필수적인 의료서비스 이외에 환자의 선택부분에 의한 부분은 보험 급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했다.

즉, 4대 중증질환 국가 전액보장 공약은 의학적으로 필요한데 건보 재정 문제로 급여화가 안 된 검사나 약물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한다는 뜻이었지, 선택진료비나 간병비 등까지 모두 보장해준다는 내용은 아니었다는 것.

또, 지난해 12월 18일 배포했던 보도자료를 근거로 “박 당선인도 간병비가 진료비에 포함되지 않음을 명확히 알고 있다.”며, “비급여항목인 선택진료비 등은 재원이 마련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에 적용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박 당선인이 분명히 밝혔다.”고 설명했다.

인수위는 3대 비급여 부분은 당초 공약에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공약 수정도 아니라는 논리다.

▽“그럼 공약집과 TV 토론에서 한 얘기는 뭐냐?”
새누리당 공약집 내용
새누리당 공약집 내용
이처럼 인수위는 애초부터 공약에 3대 비급여는 포함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반박하는 단체들은 새누리당의 공약집과 TV 토론 시 박 당선인의 발언을 근거로 ‘말 바꾸기’라고 비판했다.

공약집에는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이 포함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해 국가가 보장한다고 돼 있으며, 근거자료로 제출한 건강보험공단 자료와 1조 5,000억원이라는 비용에도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가 포함돼 있다는 것.

시민단체들은 다만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환자 중 수술 받은 환자의 비용만 포함됐고 간병비가 빠져 과소추계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16일 대선후보 TV토론에서도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간병비는 보험대상이 되느냐.”고 묻자 “치료비에 전부 해당이 된다.”고 답했고, “간병비, 선택진료비를 다 보험급여로 전환하는 데에도 1조 5,000억원으로 충당할 수 있느냐.”고 묻자 “네.”라고 답한 것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당시 문 후보가 “공단의 자료를 받아보니 지난 한 해 동안 암환자 의료비만 해도 1조 5,000억원으로, 박 후보가 4대 중증 질환 재원으로 연간 1조 5,000억원을 제시한 것은 불가능한 수치”라고 지적하자 박 후보가 “그렇게 많은 재정이 소요되는 게 아니다. 공단이 계산을 잘못한 것 같다. 비급여를 커버(포함)해 100% 책임지겠다.”고도 했다.

소요재정에 대한 논란도 이어졌다. 박 당선인 측은 해당 공약을 실행하는데 연간 1조 5,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지만, 인수위는 정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최소 2조~3조원 가량의 재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예산 추계 검토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4대 중증질환에 간병비와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를 포함할 경우 진료비 상승률 등을 감안할 때 2014∼2017년 4년 간 22조원 가량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시민ㆍ환자ㆍ노인단체들 “박 당선인은 약속 지켜라”
인수위의 발표에 분노한 각 단체들의 비판 논평과 성명, 기자회견도 이어졌다.

먼저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등 보건의료인들로 구성된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이하 보건연합)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약속은 꼭 지겠다던 이른바 ‘민생대통령’ 박 당선인이 대통령직에 취임하기도 전에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태도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보건연합은 TV 토론 시 발언과 공약집 등을 근거로 박 당선인이 말을 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심각한 의료비 부담 때문에 실날같은 희망을 같고 박근혜 후보를 찍었을지도 모를 환자들과 국민들에게 거짓공약에 대해 솔직한 사과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인수위와 박근혜 당선인은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행위를 이제 중단하라.”며, “3대 비급여의 급여화와 보장성 강화는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부문이고, 한국 의료 수준을 개선할 중요한 문제인만큼 이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이 내걸었던 공약에 대해 진지한 답을 하라.”고 촉구했다.

같은 날 노년유니온,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등 4개 단체는 삼청동 금융연수원 인수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박 당선인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공약하고, 일부 노인에게만 지급되는 현행 기초노령연금과 달리 완전 보편연금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름도 ‘기초연금’으로 바꿨으며 공약을 실현할 재정방안도 마련돼 있다고 공언한 사실을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 기초연금 공약을 어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처음에는 현재 가입자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가져다 기초연금 재정으로 사용하겠다는 방안이 나오고, 이에 대해 비판이 거세지자 국민연금 수령자에게 기초연금을 감액하는 차등지급하는 방안이 또 나왔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수령자를 집단별로 나누어 기초연금을 차등지급하는 것은 노인 중에서 국민연금 수령자를 차별하는 일이다. 지금보다는 손해가 없겠다는 미봉책을 내놓았지만 그렇다고 형평성 문제가 해소되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또, 이번 기초연금 공약 수정으로 불이익을 받는 국민은 현재 노인들만이 아니며, 앞으로 국민연금을 받을 미래 수령자(현재 가입자)는 더 큰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미가입자인 저소득계층 노인에게만 지급되는 제도로 사실상 전락해 모든 노인에게 지급해 보편연금을 만들겠다던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이 일부 계층에게만 지급되는 선별복지 방식의 공공부조로 변질될 것이다.”며, 이는 공약집에 있는 기초연금 내용을 완전히 뒤바꾸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연ㆍ대표 안기종)도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인수위는 의료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날을 세웠다.

인수위가 ‘4대 중증질환 병원비 전액 국가책임제’에 3대 비급여가 포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박근혜 후보의 공약 취지는 국민이 부담을 느끼는 질병치료에 꼭 필요한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보장하는데 있으며, 필수적인 의료서비스 이외에 환자의 선택에 의한 부분은 보험급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 데 따른 비판이다.

환연은 “선택진료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지 이미 오래이고, 입원시 1인실, 2인실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가 된지도 이미 오래다.”며, “한 달에 간병비 180만원~250만원을 지불할 능력이 안 되면 환자가족 중 누군가가 휴직하거나 휴업하고 직접 간병을 해야 하는 것이 의료현실이다.”고 주장했다.

또, 중증질환 환자는 전체 비급여 진료비의 약 40%에 해당하는 금액을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로 지불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환연은 3대 비급여 모두를 해결하기에 재정부담이 너무 크다면 우선 선택진료비부터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의료적 상급병실료를 해결하고, 그 다음에 간병비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환자들은 박 당선인이 적어도 약속한 공약만은 실천할 것으로 믿었는데, 대통령에 취임도 하기 전에 ‘4대 중증질환 병원비 전액 국가책임제’에 3대 비급여가 포함 되는지 안 되는지가 사회적 논쟁거리가 된 것에 대해 당혹스럽다.”며, “공약대로 실천하든지, 공약을 수정하든지 하나를 결정해 발표해 국민과 환자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와 건강보험가입자포럼은 지난 13일 인수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당선인이 복지 공약 중 가장 중요했던 건강보험과 연금과 관련된 2개의 공약을 파기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도 ‘국민과의 신뢰’를 운운하는 것을 보며 매우 큰 실망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박 당선인은 중요한 복지 공약을 파기하고,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남발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약속한 바를 지켜야 한다.”며, “3대 비급여가 빠진 ‘전액국가보장’ 이란 말은 있을 수 없는 표현이다.”고 주장했다.

▽야당도 ‘날선 비판’, 박 당선인 입장표명 촉구
인수위의 해명자료 발표에 야당 측도 발끈했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인수위의 발표에 대해 “박 당선인은 벌써부터 국민과의 약속을 폐기하려고 하는 것이냐.”고 날을 세웠다.

박 원내대표는 특히 “새누리당의 공약집에는 비급여 진료비를 포함해 급여화를 추진하겠다고 명시돼 있으며, 박 당선인이 TV 토론에서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며, “거짓말 정치는 이명박 정권 5년으로 족하다. 박 당선인이 왜 그 길을 따라가려고 하냐.”고 꼬집었다.

그는 “박 당선인은 지난해 경로당, 쪽방촌을 방문할 때도 이 공약을 거듭 약속했다.”면서, “박 당선인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성호 수석대변인과 이언주 원내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원안대로 공약을 이행할 것을 주문했다.

결국 박 당선인이 전면에 나서 원안대로 공약 이행이라는 인수위의 발표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하거나, 재정 부담 등을 솔직히 인정하며 수정론을 발표할 때까지 말 바꾸기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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