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한의사, 간호사, 약사 등 총 24개 보건의료 직종의 면허시험 및 자격시험을 위탁 받아 시행ㆍ관리하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ㆍ원장 정명현)이 최근 잇따른 악재로 곤혹을 겪고 있다. 필기시험 채점 오류로 이미 합격 발표된 5명의 응시생이 불합격 처리 됐으며, 실기시험의 구체적인 채점기준을 공개하지 않아 응시생들의 불만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수석 합격자의 점수마저 잘못 공개하는 등 크고 작은 실수가 끊이지 않아 특수법인 설립의 청사진을 그리던 국시원의 행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기시험 채점 오류로 5명 합격→불합격 처리
▲필기시험 채점오류 공고 후 게재한 사과문
▲필기시험 채점오류 공고 후 게재한 사과문
국시원은 지난달 23일 발표한 제77회 의사 국가시험 합격자 명단이 채점 과정상의 오류가 있었다며, 재채점 결과를 반영한 최종합격자 명단을 25일 정정 공고했다.

국시원은 전산채점프로그램 상 제3교시 문항 당 배점 오류로 응시자의 점수를 잘못 산출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당초 합격자로 발표됐던 5명의 응시생이 불합격 처리됐다는 것. 국시원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응시생들은 이틀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됐다.

정명현 원장은 국시원 홈페이지에 게재한 사과문을 통해 “이번 사안으로 국시원의 신뢰가 훼손된 점에 대해 보건의료인 국가시험 관리업무를 관장하는 책임자로서 크나 큰 책임을 통감한다.”며, “원인 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과 함께 이로 인한 모든 책임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정 원장은 또, “국시원은 이번 사안을 큰 교훈으로 삼아 보건의료인 국가시험 관리과정 전반에 대해 면밀하게 재검토하고, 심기일전의 각오로 다시는 이와 같은 오류가 발생되지 않도록 치밀한 대책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원장이 모든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사과문에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미 국시원에 대한 신뢰도가 무너진 상태인 만큼, 재채점된 필기시험 점수도 믿을 수 없다는 지적이 이어진 것.

응시생 H 씨는 국시원 홈페이지에 “의사국시 필기시험 재채점 결과가 가채점 점수보다 0.5점 떨어졌다.”며, “최초 발표 시에는 가채점 점수와 같았는데 재발표 점수는 다르니 국시원 전산채점에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실기시험 명확한 채점기준 공개 안하나?
실기시험 채점결과에 대한 이의제기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실기시험은 시험영상이 공개되지 않으며, 세부항목 채점표를 비공개 자료로 분류하고 pass/fail 여부만 알려 응시생들은 어떤 항목에서 기준미달인지 알 수 없기 때문.

국시원 측은 당초 의사 실기시험은 pass/fail 여부만을 결정해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관리ㆍ운영되고 있으며, 개인별ㆍ항목별 점수는 현재 비공개 범위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시원 홈페이지에는 실기시험의 채점기준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응시생들의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응시생 K 씨는 “의사국시에 응하는 수험생들은 4년에서 6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과정을 배우기 때문에 적어도 자신이 치렀던 시험의 어떤 부분이 틀렸고 어떤 부분을 잘했고,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인지한다.”며, “그런데 수년 동안 공부한 시험에서 전혀 납득이 안 가는 불합격 통보를 받게 되면 그냥 못 봤겠지라고 생각하고 1년 뒤 시험을 기다려야 하냐.”고 반문했다.

어느 항목에서 부족하고 모자랐는지, 적어도 자신이 치른 시험의 정보에 대해서는 알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응시생은 특히 OMR 카드 답안이 아닌 주관적인 결정으로 판단되는 시험의 경우 더욱 납득할 만한 기준을 밝혀야 한다며, 실기시험 채점기준을 공개하기 어렵다면 이의제기를 하는 응시생에 한해 재채점을 해 공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시원 측은 이에 대해 “실기시험 채점은 채점자가 각 항목별 점수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 전용 전산서버에 저장되고, 이후 합격선심의위원회에 의한 합격선 결정시에도 전산시스템으로 전 과정을 운용하는 등 시험결과 입력에서부터 결과물 산출에 이르기까지 원스톱 과정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각 과정별로 이중, 삼중의 검증단계를 둬 응시자의 결과를 처리함에 있어 절차상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축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수험생이 요구한 부분은 각 과정에서 충분히 검증되고 재확인이 이뤄진 부분이고, 실기시험 관리상 비공개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 등으로 추가적인 확인은 불가함을 양해달라.”는 답변을 내놨다.

▲국시원 홈페이지 올라온 응시생들의 항의글
▲국시원 홈페이지 올라온 응시생들의 항의글

실기시험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응시생 J 씨도 “총점은 통과점수에 해당하지만, cpx 2개 문항과 osce 3개 문항 fail로 불합격이라고 하더라.”며, “어떤 항목에서 fail 했는지 알고 싶다고 했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밝힐 수 없다는 말만 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J 씨는 “어떤 시험이든 기준이 명확히 있고, 그 기준을 밝히지 않는 시험은 없으며 어떤 시험이든 본인이 치른 시험에 대한 정보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며, “채점기준을 정확히 밝히고 어느 항목에서 문제가 있어 불합격했는지 설명을 듣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도 국시원 측은 “요청한 세부항목 확인은 채점표를 직접 확인해야 하지만, 실기시험의 채점표는 꼭 해야 되는 것과 그에 해당되는 점수 등 시험문제의 답안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비공개 자료로 분류되고 있다.”고 답했다.

또, “정보공개와 관련해 답변이 불만족스럽다면 1차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국시원에 해당자료 열람을 정식을 신청할 수 있다.”면서도, “모든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못하는 점을 양지해달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응시생들의 실기시험 채점기준 공개 요구 목소리가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국시원 측은 공개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시원 시험관리국 실기시험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실기시험 채점기준 공개 여부와 관련한 방침은 1회 때부터 계속 유지하는 부분이다.”며, “이미 지난해에도 같은 논의가 있었지만 공개하지 않기로 결론이 난 사안이다.”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는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 실기시험의 특성을 반영해 초반에 결정한 사안들로, 현재로선 공개할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수석자 점수까지 잘못 기재
이뿐만이 아니다. 국시원은 수석합격자의 점수까지 잘못 발표하는 오류를 범했다.

앞서 국시원은 지난달 23일 의사국시 합격자를 발표하며, “수석합격은 400점 만점에 372점(95.4점/100점 환산기준)을 취득한 원광대학교 김시호 씨가 차지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발표를 토대로 기사가 발행되자 수석합격자인 김시호 씨가 직접 기자들에게 점수 정정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김 씨가 “국시원에서 만점을 400점 만점으로 잘못 공표했는데 제 점수는 390점 만점에 372.5점(95.5/100점 환산기준)이다.”며, 성적증명서를 첨부해 이메일을 보내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

그는 “처음에는 잘못 공표됐더라도 수석의 기쁨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점수가 수정이 되지 않은 채 기사에서 계속 잘못 기재되고 모교에서도 그렇게 공표하는 것을 보고 바로잡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시원 관계자는 “390점 만점을 400점 만점으로 착각해 보도자료 작성 시 일어난 단순 실수였다.”며, 전산상의 오류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시스템 개선하고 응시생 말 귀 기울여야”
▲국시원 정명현 원장
▲국시원 정명현 원장
문제는 올해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국시원의 허술한 관리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2011년 초 의사국시 실기시험 문제 복원으로 논란이 일자 국시원은 10여명의 의대생들이 조직적으로 국가고시 문제를 유출했다며 고발을 단행했다.

결국 국시원의 시설 및 인력부족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임이 드러나 기소유예로 일단락됐지만, 사태를 유발한 열악한 실기시험 환경은 아직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ㆍ회장 남기훈)는 이번 논란과 관련한 성명을 통해 “국시원의 필기시험 채점오류로 보건의료인 면허시험을 관장하는 국시원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으며, 시험 평가기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신뢰가 훼손됐다.”고 꼬집었다.

의대협은 또, 의사면허 취득까지 드는 100만원 가량의 시험 응시료는 과도하고, 실기시험의 정확한 채점기준이 공개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의사 실기시험의 정확한 채점 기준을 공개하고, 시험 후 응시생들이 자신의 시험 채점 결과를 열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부는 더 이상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의료인 면허시험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고 대폭적인 국시원 예산 증액을 통해 신뢰성 있는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기시험센터 건립을 위한 별도 예산을 배정해 시행기간 단축을 비롯한 현재까지 지적된 시험 운영상의 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응시수수료로 충당되는 운영구조를 바꾸기 위해 정부 지원을 확대해 학생들의 국가고시 응시료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응시생 P 씨도 국시원 홈페이지에 남긴 글을 통해 “이의신청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는 국시원의 모습을 보며 응시생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며, “그 정도로 문제에 자신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람은 없는지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현재 국시원의 모습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고 이제는 두렵기까지 하다.”면서, “이런 흐름에 편승해 의과대학들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 떨어질 만한 사람들을 미리 솎아내 합격률을 높이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채점 오류를 시정해 통보했으니 끝났다. 이번 일로 책임질 것은 지겠다는 말만 쏟아낼 것이 아니라, 합격률에만 집착한 것은 아닌지, 진짜 중요하고 제대로 된 문제를 출제했는지, 억울한 사람은 없는지에 신경을 써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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