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물 신약을 두고 의사와 한의사들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한의사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청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하는 등 천연물 신약 처방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의사들은 전문약으로 분류된 천연물신약을 유통시킨 함소아제약을 고발하면서 맞대응을 하고 있다. 이런 갈등 속에도 보건복지부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천연물신약 논란과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들의 시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봤다.

우선 천연물 신약이 한약인지 약인지를 따져보기 이전에 천연물 신약이 무엇인지 천연물 신약으로 출시된 약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선 천연물 신약이란 ‘천연물 성분을 이용해 연구, 개발한 의약품으로서 조성성분 또는 효능이 새로운 의약품’을 말한다.

천연물 성분은 천연물에 함유돼 있는 물질로 생체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생물활성을 가지는 물질이며 다시 천연물은 육상 및 해양에 생존하는 동식물 등의 생물과 생물의 세포 또는 조직배양산물 등 생물을 기원으로 하는 산물을 뜻한다.

이 같은 천연물 신약은 현재까지 총 7종이 허가됐다.

SK케미칼이 2001년 출시한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정200㎎은 꿀풀, 하눌타리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을 원료로 만들었다. 이후 2003년 구주제약의 골관절염 치료제 아피톡신주사(봉독주사), 2005년 동아제약이 쑥(애엽)을 원료로 개발한 위염치료제 스티렌을 출시했다.

최근 녹십자가 발매한 관절염치료제 신바로는 자생한방병원에서 사용하는 추나약물을 임상시험을 통해 제품화했고 안국약품이 지난해 10월부터 판매한 기관지염 치료제 시네츄라시럽은 두릅나무과의 건조 잎인 ‘아이비엽’ 성분에 ‘황련’이라는 동양 생약제제 성분을 더했다.

또 동아제약은 나팔꽃 씨와 현호색의 덩이줄기에서 배출한 천연물질을 주원료로 기능성 소화불량증 치료제 모티리톤정을 출시했으며 한국피엠지제약 골관절염 치료제 레일라정도 전통 생약 가운데 관절 보호 및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진 12개의 생약으로 구성됐다.

▽한약재ㆍ한약제제를 썼으니 한의사들의 것?
이처럼 현재 출시된 천연물 신약 대다수가 한약재나 한약제제(복합처방)를 이용했다. 이를 근거로 한의사들은 한의사의 업무범위에 해당되는 의약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천연물 신약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천연물신약개발의 시작단계에서는 한약재(단일 약재, 생약재)이나 한약제제(복합처방)가 지닌 경험적 정보를 이용하거나 활용해 연구개발자의 목적에 맞는 소재(제제)를 선택, 해당소재와 관련된 선행연구를 참고하기도 하며 아무런 선입견이 없이 연구개발자가 보유하고 있는 활성검색기술을 이용해 대상소재를 검색하기도 한다.

한약제제를 활용한 연구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원래의 처방대로 사용하지는 않고, 원하는 약효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처방약재의 조성을 변경하거나 포함된 약재 중에 몇 가지를 제거해 단순화하기도 한다.

또한 약효와 부작용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원료와 제품의 제조방법(추출법, 제제화, 표준화 등)을 현대과학적 기술을 접목해 개발하고 있으므로 전통적인 한약제제 제조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게 진행된다.

뿐만 아니라 천연물 신약은 새로운 제제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원료의 표준화와 품질관리기법이 개발돼야 하고 현대적 개념의 임상시험을 거쳐서 효능을 검증하는 등 한약제제의 전통적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제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약=천연물신약, 등식 성립 안돼
한약과 천연물의 차이점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좀 더 쉽게 접근해 보자.

한약은 전통 의약서에 있는 처방을 원전 방식대로 제조해 복용한다. 반면 천연물신약은 현대적 개념에 적합하도록 모든 과학적 분석과 검증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용도 혹은 복합제제로 개발된다.

즉 개발된 천연물신약이 개발의 소재나 정보의 근거를 한약에 두었다고 하더라도 개발과정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제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동아제약의 스티렌을 보자. 스티렌은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의 이은방 교수가 애엽(쑥)에 함유돼 있는 플라보노이드 중 유파틸린이 항궤양 효과가 있음을 1993년 세계약학연맹회의에서 발표했다.

동아제약(주) 연구소는 의약품으로서의 개발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1995년 5월에 이은방 교수와 공동으로 개발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해 본격적으로 연구에 착수했다.

애엽추출물은 유파틸린 이외의 자세오시딘(Jaceosidin)과 같은 다른 유효성분이 있음을 밝혀냈으며, 또한 유파틸린 단독에 의한 약효보다 애엽추출물의 약효가 효능ㆍ효과면에서 더 우수한 것으로 확인이 됐고 유효성분을 고농도로 함유하는 추출물의 제조방법을 확립했다.

2000년 8월에 후기 2상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고, 5개 기관에서 자체 IRB 통과 후 3상 임상시험에 착수했고 2001년 12월에 3상 임상시험을 550예를 실시하고 종료, 2002년 6월 12일에 식품의약품안전청(KFDA)으로부터 신약허가를 취득했다.

자연의 쑥을 그냥 먹거나 익혀서 먹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한방에서만이 아니라 민간에서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스티렌은 동일한 원료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과학적 검증과정을 거치고 전혀 다른 제조법을 통해서 창출된 약효가 확실한 제제이기 때문에 작용기전이 분명 다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한약재를 원료로 쓰더라도 천연물신약 제품과 동일시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의사들의 처방권 주장은 잘못됐다?
그렇다면 천연물 신약에 대한 처방권 주장은 잘못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떻게 보면 천연물 신약으로 출시된 일부 제품은 ‘한방의 과학화’로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다만 천연물 신약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대적 첨단과학 지식과 기술로 개발되고 검증된 것으로 질환에 대한 적응을 분명하게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성’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한의학적 처방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기전 등에 대한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해 의료일원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천연물 신약 개발ㆍ연구를 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천연물 신약에 대한) 처방권 문제는 법이나 규정 등 제도상의 문제이지만 사적인 의견으로는 오래 전에 한의학계에서 개방의 문을 닫았던 부분이 아닌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의료일원화가 되고 한약도 약처럼 의약분업이 이뤄진다면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천연물 신약은 분명 서양과학으로 증명된 약이다. 지금 출시된 천연물 신약들은 한약과 결코 똑같지 않다. 한의약적인 처방을 캡슐화 했다고 하더라도 한의사들이 처방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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