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발표된 식약청의 의약품 재분류안에 대한 토론회가 또 다시 열렸지만 여전히 각계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끝이 났다. 다만, 앞서 개최된 식약청, 국회의원, 여성단체 주최 토론회에서는 식약청 소화계약품과장이 패널로 참석했던 것과 달리, 주무과인 의약품안전정책과장이 나와 정책을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쿠키미디어가 지난 17일 순복음교회에서 ‘의약품 재분류,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마련한 ‘제9회 고품격 건강사회 만들기 토론회’에서다.

▽용어 논쟁, 응급피임약 vs 긴급피임약?
이날 토론회는 의약품 재분류 논란의 중심인 피임약과 관련, 용어 정리를 사이에 둔 설전으로 논쟁이 시작됐다.

진정으로산부인과를걱정하는의사들모임(진오비) 최안나 대변인은 약 이름은 엄연한 의학용어이므로, ‘사전경구피임약’과 ‘응급피임약’으로 정확히 불러야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사용하는 ‘사후피임약’이나 식약청이 발표한 ‘긴급피임약’이라는 용어는 국민들의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이재호 의무이사 역시 “용어는 국민들의 사고를 지배한다.”며, “국어사전에 따르면 ‘응급’은 실패율을 전제로 둔 뜻이므로 국민 오판을 불러오지 않게 의학적 용어는 국어사전에 명명된 내용을 그대로 갖다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승준 위원은 “용어 문제는 약을 바라보는 주체가 여성인지, 의료인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며, “여성을 주체로 본다면 사전, 사후로 분류하는게 오히려 타당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청 의약품안전정책과 김성호 과장은 “응급피임약도 나름대로 타당하지만, 불가피한 성관계 후 원치않는 임신에 대처한다는 차원에서 긴급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며, 일본에서도 이 용어를 사용중이나 논란이 되고 있는만큼 추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사전피임약 전문약 전환, 부작용 정말 없나
김성호 과장은 사전피임약을 전문약으로 전환한 것과 관련, 장기적인 사용을 요하는 약물이기 때문에 정기적인 의사검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건강사회을 위한 약사회 리병도 부회장은 “혈전증 등 사전피임약의 부작용 문제는 공감하지만, 과학적 근거 뿐만이 아닌 사회적 합의가 부족했다.”고 반박했다.

정승준 위원도 “혈전증 등은 우리나라에서 부작용으로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또한 저함량의 여성호르몬제제를 먹은 사람은 정상인에 비해 혈전증 가능성이 높지 않고 오히려 임산부가 훨씬 높은 혈전증 가능성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에 최안나 대변인은 “부작용 보고가 안된 것과 발생하지 않은 것은 다른 문제”라며, 우리나라의 부작용 보고체계가 미흡한만큼 부작용이 아예 없었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약 되면 접근성 떨어지고 낙태율 증가?
사전피임약이 전문약으로 전환되면 접근성이 떨어져 피임률이 더 낮아지고 낙태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최안나 대변인은 “피임약 복용률이 높은 나라는 오히려 전문약으로 분류돼 있다.”며, “외국은 의사 만나기도 어렵지만 우리나라는 병의원 접근성이 높은 만큼 문제없으며 정부는 사전피임제에 대해 보험급여를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반면 정승준 위원은 전문약 전환시 비용적 측면에서 약가상승과 더불어 진찰료, 조제료, 복약지도료 등의 추가지불로 지금의 4배까지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험급여가 된다고 해도 결국 건보공단이 지급하는 건보료도 국민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또한 정 위원은 우리나라 병의원 접근성이 높다고 하지만,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산부인과 전문의를 만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의협 이재호 의무이사는 “진찰료와 조제료 비용 등을 우려하는데, 국민의 건강과 비용을 맞바꿀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 경구피임약을 안전하게 장기처방하면 비용 감소의 측면도 있다는 것.

▽응급피임약 일반약 전환 ‘첨예한 대립’
사전피임제와 더불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응급피임약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첨예한 논쟁이 이어졌다.

김성호 과장은 먼저 “긴급피임약은 정상적 피임법이 아니라 위급상황에 한번 먹는 약이며, 오랜 사용에도 부작용이 심각하지 않아 일반약으로 분류했다.”고 전했다.

우려되는 청소년 접근성 문제에 대해서는 의약품 표시 개선, 광고 제한 등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구입에 있어 청소년 연령 제한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승준 위원은 청소년들이 성적 문제에 있어 가장 취약계층인데 문턱을 더 높인다면 국가가 미혼모를 양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며, 청소년센터 등에 무상지급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약품 재분류는 의사ㆍ약사 밥그릇 나눠먹기?
일각에서는 이번 피임약 전환을 두고 의사와 약사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리병도 부회장은 “의사회와 약사회가 모두 좋은 의미의 이익집단이다보니 회원 권익보호 측면에서 발언할 수 밖에 없어 의견이 한정적이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응급피임약과 사전피임약 뿐 아니라 일반약 및 전문약 전환품목의 시장규모를 보면 균형을 맞추려는 식의 발표라는 오해를 사는 점이라고 리 부회장은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책당국은 과학적 알고리즘이면 알고리즘, 부작용이나 접근성이면 그런 측면에서 뚝심있게 재분류를 진행했어야 하는데, 소신이 흔들리다보니 오해가 생길 빌미를 제공했다.”고 꼬집었다.

정승준 위원 역시 국가의 피임정책은 철학이 있어야 하고 헌법에 명시된 국민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측면에서 정해야 하는데, 국민이 함께 이분법적 사고로 싸우고 국가는 뒷짐만 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안나 대변인은 “이번 문제에 관심을 갖는 모든 사람은 의사와 약사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낙태를 줄일 수 있냐가 포커스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피임을 잘 해서 원하는 때 계획임신을 잘 할 수 있도록 여성 성 보건과 건강 차원에서 이번 문제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식약청 의약품안전정책과 김성호 과장, 경실련 정승준 보건의료위원,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리병도 부회장, 의협 이재호 의무이사, 진오비 최안나 대변인이 패널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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