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2010년 정기대의원총회를 끝마쳤다. 올해 정기총회는 총회 직전에 언론에 공개된 경만호 회장의 공금 횡령 의혹 건과 수개월째 이어져온 윤리위원회의 감사 징계 건으로 논란이 예고됐다. 또, 정부가 추진중인 원격의료와 리베이트 쌍벌제에 대한 집행부의 대응전략, 회관 이전 추진 과정에서의 잡음 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순탄치 않은 진행이 예상됐다. 하지만 대의원총회에서 이 같은 문제들은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다. 올해 정기총회가 남긴 과제는 무엇일까?    <편집자주>

올해 정기총회는 경만호 회장의 공금 횡령 의혹이 제기되고, 총회 전날 언론통제 소식이 더해지면서 안팎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열렸다. 본회의와 분과위원회는 언론인 취재를 제한한 채로 진행됐고, 대의원들은 내부의 문제는 내부에서 풀자는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심의에 임한 듯 비쳤다. 반면 이례적으로 젊은 의사들이 대의원회 감시자로 나선 것과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소수 의견이 있었다는 점은 이전 총회와 달라진 모습이었다.

▽본회의ㆍ분과위원회 취재 통제
의협 홍보국은 정기총회를 하루 앞둔 24일 오전 출입기자들에게 ‘정총 취재를 제한하겠다’고 이메일로 통보했다.

의협 관계자는 “대의원회에서 대의원과 회원 및 의협직원을 제외한 외부인의 총회장 및 분과위원회 회의장 출입을 통제해 달라는 요청을 해와 부득이하게 언론인의 취재를 제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의협은 회원들의 권익과 협회 발전을 위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안건들이 많아 취해진 조치라며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경만호 회장의 공금 횡령 의혹과 윤리위원회의 이원보 감사 징계, 외부용역 연구비 논란 등 민감한 사안이 많아 취재를 통제한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취재진들은 현장에서 ‘대의원회가 의사협회의 발전을 위한다면 의사진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대의원회가 차기 정기총회에서도 언론 통제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개원가 안팎에서는 정기총회에서 논의되는 다양한 의견들을 일반회원도 전해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협회가 언론 통제를 통해 이를 막는 자세는 옳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젊은 의사들, 감시자가 되다
정기총회 현장에는 개회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일반회원 70여명이 모여 본회의를 참관하기 위해 대기했다.

일부 회원은 의약품 리베이트 쌍벌제를 통과시킨 국회 복지위에 대한 항의 표시로 국회의원들이 보낸 화환을 쓰러뜨리기도 했다.

개회식이 끝나고 정기총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이들은 본회의장에 입장해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대의원석을 에워쌌다.

이들은 피켓과 현수막을 통해 민심을 거스르는 경만호 집행부의 퇴진과 정부의 의료정책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대의원들의 자성을 요구했다.

특히 선배 의사들에게 의료계의 위기 속에서 선배들은 무엇을 했냐며, 왜곡된 의료제도를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말라고 호소했다.

이들의 대표자격인 전국의사총연합 노환규 대표는 본회의중 발언기회를 얻자 “일선 의사들의 절박한 상황인식을 대의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훌륭한 의사가 되는 길 뿐 아니라 훌륭한 의료제도를 만들어 가는데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노 대표가 발언을 얻기까지는 우려곡절이 있었다. 한 대의원이 젊은 의사들의 입장을 들어보자며 발언권을 주자고 의견을 냈지만 대의원 투표에서 외면 받은 것이다. 다른 대의원의 재차 요구가 있자 마지 못해 의장이 직권으로 1분을 할애해 줌으로써 발언할 수 있었다.

이날 젊은 의사들은 정기총회의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의원들도 과거 정기총회보다 안건 심의에 집중했고, 예년보다 많은 대의원들이 본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들만의 리그가 될 것인가
예년에는 의사협회 정기총회에 복지부장관을 비롯해 다수 여ㆍ야 국회의원과 보건의료단체장들이 참석했다.

의사협회 정기총회는 보건의료 대표단체로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축제의 장이었다. 하지만 장동익 전회장의 국회로비 사건을 전후로 정기총회의 위상은 추락했다.

여기에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이 보건의료 단체의 총회를 비롯한 행사 불참을 선언한 이후 정부 관계자와 보건의료 단체장의 참석도 줄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협과 국회가 보건의료 현안을 놓고 대립하면서 국회의원의 덕담을 듣기도 어려워졌다.

올해 국회의원 중 유일하게 참석한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축사에서 “혼자 참석해 당황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현희 의원이 과거 의협 법제이사를 맡은 전력이 있는 걸 감안하면 국회와 의협의 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외부 인사의 참석은 단순히 축사 한차례 듣고 안 듣고의 차이가 아니다. 그들의 참석자체가 의협의 위상을 대변해 주기도 하거니와 그들의 눈과 귀와 몸으로 의사들의 요구와 열망을 전해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정기총회와 젊은 피 수혈론
정기총회는 1년간 회무의 첫단추를 꿰는 중요한 날이다.

지난 1년간 진행한 업무를 확인하고, 살림살이를 점검한다. 동시에 앞으로 1년 간 추진할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짜고, 회무 방향을 정한다. 수정이 필요하거나 새로 추가해야 할 정관을 개정하기도 한다. 대의원들은 직역과 지역에서 건의된 다양한 안건을 심사숙고한 후 심의해야 한다.

본회의장에서 한 원로 대의원은 “내 나이가 이제 곧 70인데 22년 동안 대의원을 하면서 한 번도 불참을 한 적이 없이 이 자리에 임했다”고 발언했다.

본인은 자부심으로 한 발언이었겠지만 총회를 참관하러 온 젊은 의사들에겐 상당한 반감을 안겼다.

원로 대의원 한 명의 발언을 문제 삼을 것까지는 없지 않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의협에는 십 수 년째 대의원 자리를 도맡고 있는 회원이 다수 존재한다. 이는 젊은 의사들의 대의원 진입기회를 막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대의원을 맡고자 하는 회원이 없어서 한 회원이 대의원 자리를 오랫동안 맡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을 하려는 젊은 의사들이 없다는 푸념도 들린다.

과연 그럴까? 올해 정기총회에 자발적으로 참석한 젊은 의사들의 발언과 행동을 봐서는 동의하기 힘든 주장이다.

또, 대의원회는 수년 전부터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요구한 대의원 증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협의회 몫으로 배정된 대의원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정이 쉽지 않겠지만 이제라도 젊은 의사들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전공의협의회나 공중보건의사협의회의 대의원 추가 배분을 고려해 볼만 하다.

보건의료를 둘러싼 환경은 쉴새 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젊은 피가 필요하다. 정부를 비롯한 모든 조직은 끊임없이 젊은 피를 수혈한다.

다행히 의사사회에서도 젊은 의사들의 의사회 참여가 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의원회도 관행에서 벗어나 의료제도를 고민하고, 의사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젊은 의사의 참여를 늘려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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