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대 의사협회장 선거가 당초 예상대로 노환규 후보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일부 기득권 인사들이 결선 투표를 예상하기도 했지만 이번 선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결과가 뻔한 선거였다.

결과가 뻔한 첫번째 이유는 이번 선거가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 즉 ‘영화관 선거’로 치러졌기 때문에 부동표가 소수였다는 점 때문이다.

회원이 선거인단 자격을 얻어 의사협회장 선거에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먼저 많게는 300여 만원에 달하는 의협 중앙회 및 지역의사회 회비를 내야 했다.

또, 의사면허증사본 1부, 이력서 1부, 주민등록등본 1부, 명함판 사진 2장, 후보자 소개서 원고 1부, 개인정보동의서 1부 등 여섯 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이어, 일정 확인을 위해 지역의사회 등에 수차례 문의전화를 해야 했고, 진료시간을 쪼개 선거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해야 했다.

이러한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선거에 뛰어든 선거인단 때문에 노환규 후보 선대본부 관계자는 이번 선거를 ‘영화관 선거’로 규정했다.

당연직 선거인단이 된 223명의 정대의원을 제외한 선출직 선거인단 상당수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 영화(회장 선거 참여)를 보려고, 특정 영화의 티켓을 구매한 충성도 높은 관람객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선거 당일 후보의 연설이나 현장 분위기로 부동표가 움직이고, 이로 인해 선거 판도가 바뀔 가능성은 희박했다.

자신이 보려는 영화를 선택하고 상영관에 착석한 관람객이, 이미 영화가 시작된 상황에서 환불을 요구하며 퇴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결과가 뻔한 두번째 이유는 각 후보 진영의 판세 예측 때문이다.

노환규 후보 진영은 노 후보의 압승을 예상했다. 노 후보가 1차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될 확률을 적게는 60%에서 많게는 90% 이상으로 예측하면서 결선 투표는 없다고 자신했다.

2위가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나현 후보 진영은 나 후보와 노 후보가 결선에 진출한 후, 나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측했다.

주수호 후보 진영은 주 후보와 노 후보가 1위와 2위를 기록해 결선에 진출하면, 주 후보에게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고, 윤창겸 후보 진영도 윤 후보와 노 후보의 결선 진출을 예상했다.

노환규 후보 진영이 노 후보의 압승을 자신하는 상황에서 나현ㆍ주수호ㆍ윤창겸 후보 진영은 이를 부정하기 보다 모두 노 후보의 강세를 인정하고 자신을 대항마로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판세 분석을 종합해 보면 노환규 후보의 1위는 예측 가능했고, 초점은 노 후보가 과연 1차에서 과반을 넘기느냐 여부였다.

노환규 후보 진영은 선거 초반 정대의원 선거인단과 전공의 선거인단을 빼고 약 650표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정대의원에서 20표~50표, 전공의에서 투표율의 60~70% 득표가 예상된다며, 800표 안팎의 득표를 예상했다.

타 후보 진영이 약 350표에서 450표 득표를 예상한 것과 상당한 격차를 보인 수치이다.

무엇보다 노 후보 진영의 판세 예측은 직역과 지역별로 구체적으로 분석됐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높았다.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노환규 후보는 예상 수치와 유사한 득표율을 보인 반면 타 후보들은 선거기간중 주장했던 예상 수치의 절반 이하의 득표율을 보였다.

결과가 뻔한 세번째 이유는 선거 프레임(뼈대)이 노환규 후보에게 맞춰졌기 때문이다.

모든 선거에서 앞서나가는 후보는 유권자와 언론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다.

이번 선거에서는 노환규 후보가 그랬다. 노 후보는 의사회원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고,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도 가장 높은 후보였다.

또, 앞서나가는 후보는 다른 후보의 견제 대상 1호이기도 하다.

선거는 1위를 하지 못하면 패배라는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에 2위권 후보들은 1위 후보를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편다.

일부 후보 진영이 노환규 후보가 운영하는 의사커뮤니티 닥플의 게시글과 10여년 전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 구분에 대한 노 후보의 의견을 집중 부각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타 후보 진영의 선거 전략은 노 후보의 공약과 최근 행적에 의해 뭍혀 버렸다.

오히려 선거인단에게 노 후보가 유력 주자로 부상중이라는 점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노 대표를 대세론의 중심에 위치시킨 것이다.

결과가 뻔한 네번째 이유는 각 후보 진영의 선거운동 전략 오판 때문이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선거는 여당에게 다시 기회를 주느냐, 야당을 선택해서 새로 판을 짤 것이냐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의협회장 선거의 경우 현 집행부를 신임하느냐 불신임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경만호 집행부가 회무를 잘 이끌어왔다고 생각하면 경 회장의 노선을 따르는 후보에게 표를 주면 되고, 그 반대라면 경 회장의 노선과 반대되는 후보에게 표를 주면 된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여섯 명의 후보를 보면 전자는 나현 후보이고, 후자는 최덕종ㆍ주수호ㆍ노환규ㆍ윤창겸 후보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나현 후보는 현 집행부를 재신임해야 하는 이유를, 타 후보들은 현 집행부를 심판해야 하는 이유를 선거인단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했다.

누가 봐도 경만호 회장 재신임 대 심판, 나현 후보 대 그 외 후보, 보수 후보 대 개혁 후보의 구도로 판이 짜여진 상황이었다.

실제로 최덕종ㆍ주수호ㆍ노환규ㆍ윤창겸 후보는 변화와 개혁의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막상 선거전이 시작되자 후보들은 개혁 성향이 가장 강한 노환규 후보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집중했다.

자신을 변화와 개혁의 적임자라고 주장했다면 현 집행부가 무엇을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바꿔나갈지 대안을 제시하며 선거인단을 설득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데 유력 주자로 부상한 노 후보를 타깃으로 설정한 것이다.

결국 개혁을 주장하는 후보들이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선거인단의 외면을 받았고, 노환규 후보의 일방적인 승리로 선거는 끝이 났다.

결과적으로 노환규 후보는 2위를 기록한 나현 후보의 4배에 육박하는 표를 얻어 당선됐다.

이를 발판으로 대정부ㆍ대국회ㆍ대언론 및 회무 수행에서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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