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중 일부를 미용기기로 전환해 미용사들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일명 ‘미용사법’이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 결국 법안폐기라는 운명을 맞게 됐다. 이 법안은 법안소위를 통과해 복지위 전체회의로 넘어갔다가 의료계의 반발을 의식한 위원들의 지적에 다시 법안소위로 회부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결국 미용사법은 최근 열린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계속심사’로 결론이 나 18대 국회 처리 가능성은 없어졌다. 법안 발의부터 폐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짚어봤다.

▽3개 법안 병합심사한 대안 탄생

국회 보건복지위는 지난해 11월 9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신상진 위원(새누리당)이 대표발의한 ‘미용사법안’과 이재선 위원장(자유선진당)이 대표발의한 ‘뷰티산업진흥법안’, 손범규 의원(새누리당)이 대표발의한 ‘미용업법안’을 병합심의해 ‘미용ㆍ이용 등 뷰티산업의 진흥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미용사법)로 대안 가결했다.

이 법안들은 미용업(뷰티산업)이 공중위생관리법에 속해 있어 21세기 유망산업으로 육성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산업 발전과 미용인 지위향상을 위해 독립법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고주파 등 의료기기 중 일부를 미용기기로 별도 분류해 미용업소에서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

당시 미용기기로 별도 분류할 의료기기는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고주파ㆍ저주파ㆍ초음파 미용기와 적외선ㆍ자외선방사 피부관리기 등 전자기파 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유사의료행위 우려해 ‘발끈’
미용사법의 법안소위 통과 소식에 의사단체는 즉각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으며, 각 개원의들도 개별적으로 항의의 뜻을 전했다.

대한의원협회(회장 윤용선)는 “이 법안은 기존 의료기기로 분류됐던 것이 미용기기로 분류돼 미용사들에 의해 자유롭게 사용돼 유사의료행위가 성행함으로써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것이다.”고 경고했다.

전의총 노환규 대표 역시 “이 법안이 시행된다면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면허자가 미용기기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유사의료행위가 범람할 것이 불 보듯 뻔하며, 피부관리실이 병의원과 경쟁하는 상황은 물론, 병의원 내 피부관리실의 페쇄를 요구하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초 개원의들도 법안 통과 제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의사포털 등을 중심으로 법안을 발의한 신상진 의원실에 항의전화를 하자는 의견을 공유해 집단 항의전화 및 문자, 이메일, 게시판 글 등을 남겼다.

이재선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개최된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설치신고와 사용자 준수사항, 부작용 관리, 과대광고 금지, 이미용기기 기준 규격화 등 관련 문구 전체에 대한 의료계의 비난 전화와 팩스, 이메일 등이 나와 법안심사소위원장인 신상진 의원에게 이어져 사무실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결국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던 법안이 재논의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면서, “그 적절성 여부를 떠나 입법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이 어떠한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고 전했다.

▽복지부에 잘못 떠넘기기?
의료계의 극심한 반대가 계속되자 미용사법안의 미용기기 조항이 복지부와 국회 전문위원이 자구적으로 문구를 삭제함으로써 일어난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신상진 의원은 지난해 11월 21일 열린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이같이 지적하며, 복지부 및 전문위원 담당자를 상임위 이름으로 책임을 물어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여러 이해단체간 이해 충돌이 있던 이 법안은 지난 9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의결할 당시에는 2조 정의 부분의 1항 4호 미용기기 조항을 ‘이ㆍ미용기기란 질병의 진단과 치료 목적이 아닌 얼굴, 피부 등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 기구’로 의결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후 소위심사관련 결과 조문대비표에 보면 ‘질병의 진단 치료목적이 아닌’ 이라는 부분이 삭제됐다는 것이다.

신 의원은 “이 과정에서 전문위원과 복지부도 의견을 같이 했다는데, 이는 국회입법권을 침해하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면서, “소위에서 의결된 내용을, 미용기기가 의료계와 미용업게의 첨예한 오래된 갈등의 소지가 있는 것을 국회나 국회 전문위원은 잘 알면서도 임의로 삭제하고 자료까지 유출돼 이해당사자들의 많은 항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일단 저지는 했지만…
복지위는 지난해 12월 23일과 26일 열린 1ㆍ2차 법안심사소위에 미용사법을 상정했지만 의료계의 강한 반발 속에 결국 위원들간의 의견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계속 심사하기로 결정했으며, 27일 열린 3차 법안심사소위에는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법안소위에서는 이 법안의 쟁점사항인 이ㆍ미용기기 조항에 대한 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계 등의 우려대로 이 조항이 불법 의료행위를 양산할 수 있다는데 동의한 일부 위원들이 해당 규정을 삭제하고 법안을 의결하자고 주장했지만, 그럴 경우 법안의 의미가 없어지며 미용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원문 그대로 의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된 것이다.

그러나 법안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 계류중인만큼 남은 2월 국회와 4월 국회에서 논의되는 상황을 봐야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당시 신상진 의원은 이ㆍ미용기기 조항 부분을 삭제해 2월 열리는 차기회기에 다시 올리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복지부는 이ㆍ미용기기 조항을 삭제하지 않고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방향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안소위에서 재심사, 결국 폐기 수순
운명의 2월 국회가 개회됐다. 18대 국회 일정은 2월과 4월 회기까지 남아있지만 총선 일정으로 인해 사실상 4월 국회 개회는 어려운 상태. 따라서 2월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된다면 18대 국회 내 처리는 어려워 법안폐기가 되는 셈이었다.

보건복지위는 지난 13일 오후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미용사법과 약사법 개정안 등 15개의 법안을 심사했으나, ‘미용ㆍ이용 등 뷰티산업의 진흥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계속심사’하기로 결정하고 14개 법안만 가결해 전체회의에 넘겼다.

결국 18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미용사법은 자동 폐기될 것으로 보이며, 향후 19대 국회에서 법률제정을 위해서는 입법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이번 법안 발의와 폐기 과정을 거치며 의료계는 단결된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입법저지 활동을 펼쳐 파워를 입증하고, 자신감을 확인하는 수확을 얻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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