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액계약제는 건강보험 급여비의 총액을 산정하고, 이를 의료 단체에 배분하는 형태의 계약을 말한다. 총액계약제가 시행되면 의사들은 정해진 금액 내에서 파이를 나눠 갖게 되므로 본연의 임무인 진료행위에 제약을 받게 될 여지가 크다.
의료계 곳곳에서 개원의, 전공의, 교수 등 모든 직역이 반대하는 이유가 나온 만큼 파업을 해서라도 강력 반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 이사장에 대해서도 정부의 역할을 위탁 받은 대행기관의 수장이 명백한 월권을 한 만큼 강력한 응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의사협회 산하 시도의사회도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면서 무조건 반대입장을 확고히 했다.
그런데 성난 의사들을 보듬고, 의료계의 의견을 한데 모아야 할 의사협회의 움직임은 사뭇 다르다.
정 이사장의 발언이 나온 당일 의사협회 대변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파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싸우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다음날 의사협회가 발표한 총액계약제에 대한 성명서를 보면 강력한 항의와 경고의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성명서 도입부에는 ‘총액제의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전날 대변인의 파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강경 발언과 맥을 같이 하는 표현은 본문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발언 당사자인 ‘정형근’ 이사장에 대한 실명도 보이지 않는다.
건보공단은 정부가 담당해야 할 보험자로서의 역할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대행기관인 만큼 보험료 징수의 효율적 제도 개선과 보험재정의 관리 등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달라고 충고할 뿐이다.
과연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총액계약제 발언 직후 발표한 성명서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사협회는 모든 의사들의 대표 단체인 만큼 좀더 단호하게 회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