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의 재의요구를 의결하면서 한시름 놓았던 의료계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발칵 뒤집혔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의료계는 무분별한 예외 규정으로 초진 환자 진료와, 병원급 의료기관까지 확대되는 등 비대면 진료의 원칙이 훼손된다며 우려를 쏟아냈다.

앞서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당정협의회에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코로나19 위기단계가 ‘심각’으로 상향된 2020년 2월 23일부터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는 위기단계가 ‘경계’로 하향되는 다음 달 1일부터는 불법 의료행위가 돼 정부는 법제화 이전 시범사업 방식으로 비대면 진료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당정 합의안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6월 1일부터 3개월 동안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시행한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3대 원칙으로 ▲국민건강 우선 ▲편의성 제고 ▲선택권 존중을 세웠다.

환자 안전성 확보를 위해 재진을 중심으로 하되, 의료기관이 현저히 부족한 섬ㆍ벽지 환자, 65세 이상 노인이나 장애인, 감염병 확진자의 경우 초진을 허용키로 했다. 

복지부 추진방안에 포함된 휴일ㆍ야간 18세 미만 소아 환자의 비대면 초진 허용 여부는 추가 검토를 거쳐 추후 확정할 예정이다.

편의성 제고를 위해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실시하되,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1회 이상 대면 진료한 희귀질환자, 수술ㆍ치료 후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한 환자의 경우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볼 수 있다.

환자의 선택권 존중을 위해 진료방식은 환자가 의료기관을 선택하도록 했다. 화상진료를 원칙으로 하되 노인이나 스마트폰이 없는 환자의 경우 음성전화로도 가능하도록 했다.

또, 약국도 환자가 선택할 수 있다.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으로 처방전을 전달해 환자 본인 또는 대리 수령할 수 있다.

진료 의사는 비대면 진료 허용 대상 환자인지를 사전에 확인해야 하고, 의료법상 허가ㆍ신고된 진료실에서 진료를 해야 한다.

또, 비대면 진료만 실시하는 의료기관이나 조제용 의약품만 취급하는 약 배달 전문 약국의 운영을 금지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연이어 성명을 내고 반발하고 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19일 성명을 내고, 일부 정신질환의 경우 비대면 진료 시 위험성이 매우 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철회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복지부는 심야 및 휴일 소아과의 경우, 법정 감염병 1~4급 확진환자, 장애인 및 거동불편 한 65세 이상 고령자, 도서산간 등 의료취약 거주자를 대상으로는 초진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3년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종식을 앞두고, 비대면 진료를 확산시키려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화상통화 비대면 진료를 하면 현재의 의료 불완전성에 비교도 안 되는 문제의 소지가 크다. 65세 이상의 고령자, 소아환자를 이 방식으로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몇 명이나 되겠나.”라고 우려했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의사 접근성이 높고 의료기술의 수준이 높은 대한민국 의료현실에도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전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의료계의 중론이다. 오진의 위험성 및 의료사고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것도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면허처벌 확대법이 나온 마당에 비대면 진료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의료사고에 대해 해당 의사의 면허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고 따졌다.

또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비대면 플랫폼 간 과당경쟁으로 의료쇼핑, 약물 오남용 등 문제가 불거질 것이 자명하다.”라고 주장했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방역수준의 완화에 따라 오히려 대면진료로 복귀하고 보건의료체계를 조속히 정상화시키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라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시행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의약4개 단체도 19일 성명을 내고, “비대면 진료는 지금까지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수호해 온 검증된 방식인 대면 진료와 비교해 동등한 수준의 효과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라며, “의약계와 세부적인 논의 없이 발표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 방안’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소아청소년과 야간(휴일) 비대면 진료 초진 허용 반대 ▲비대면 진료 초진 허용 대상자 구체적 기준 설정 ▲병원급 비대면 진료 비허용 ▲비대면 진료의 책임소재 명확히 할 것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불법행위에 대한 관리ㆍ감독 강화 ▲비급여 의약품 처방과 관련된 비대면 진료 오ㆍ남용 방지 등 세부조건을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비대면 진료와 관련해 세부 조건들이 충족돼야 국민이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만큼 향후,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거쳐 시범사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도 19일 성명을 내고, “코로나19 사태 동안 비대면 진료가 사회에 안착했다고 오판하는 복지부의 평가를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우려가 크다.”라면서 장기적인 추진방안을 요구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는 “비대면 사업을 장기 과제로 시행하겠다면 우선 섬 벽지 등에서 예외 없이 의원에서만 재진만 허용해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이후 확대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도 18일 성명에서 “잠재돼 있던 비만, 탈모, 미용 등의 수요를 부추겨 전체적인 의료비 부담도 커지며 이에 비례해 약화 사고의 위험성도 증가할 것은 뻔한 일이다. 비대면 진료는 감염의 위험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최소화해야 하며, 편리성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주장했다.

대개협은 “의원급 재진 원칙의 예외 허용 군의 범위도 최대한으로 했다. 100세 건강 시대에 65세 이상을 일률적으로 초진 허용 예외 군으로 정할 만큼 진료 접근성이 어려운 경우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라며, “휴일, 야간에 18세 미만 소아 환자 초진 허용도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소아 진료 공백을 의식한 면피성 행정이 의심된다.”라고 꼬집었다.

대한내과의사회는 18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내놓은 시범사업 추진방안을 살펴보면 초진환자, 병원급 의료기관까지 참여할 수 있게 한 전면적 시행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건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위험천만한 정책이다.”라며, “현존하는 보건의료체계를 송두리째 뒤엎을 수 있는 중요한 정책 결정을 의약 전문가들과 충분한 논의도 하지 않고 합의한 것처럼 호도하며 국정과제 중 하나를 해치워버리려는 자세로 판단된다.”라고 비판했다.

내과의사회는 “비대면 진료의 3대 원칙을 보면 안전하고 편리하며 선택권까지 보장받는다고 했지만, 세부조항으로 들어가 보면 각종 예외조항을 두어 초진 환자, 병원급 의료기관에까지 전면적으로 확대할 수 있게 했다. 대상 환자는 제한적으로 허용한다고 하면서 참여 의료기관과 약국에 대해서는 별도의 신청을 받거나 지정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시범사업을 하면서도 필수적인 사후검증 및 평가를 등한시할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내과의사회는 “대면 진료에서도 치료의 효과를 높이고 오진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의사-환자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된다. 비대면 진료에서는 대면 진료에서의 진찰 과정이 생략돼 신뢰 관계가 더 중요하다.”라며, “참여대상 환자의 조건에 1회 이상 대면 진료 경험만 있어도 가능하게 한 건 초진 환자를 보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럴수록 진료의 안전성은 확보되기 어렵다.”라고 꼬집었다.

내과의사회는 “기초공사가 튼튼하지 않은 건물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한시적 비대면 진료의 철저한 검증과 전문가와의 충분한 협의도 거치지 않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보다 산업적 측면으로서 졸속으로 준비한 정부의 시범사업 추진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라며, “무분별한 예외 규정으로 인해 원칙이 훼손된 정부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에 대해 반대한다.”라고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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