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취통증의학과 의사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 비현실적인 건강보험요양급여 수가 체계를 개선해야 하며, 현재 논의중인 필수의료 지원대책에도 마취 영역이 포함돼야 한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12일 서울 마포 소재 학회 사무국에서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과 기자간담회를 열고, 마취는 환자 안전을 위해 고도로 훈련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시행해야 한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환자가 마취돼 의식 소실이 발생할 경우, 기도관리가 되지 않으면 저산소증에 의한 영구적 뇌손상이 발생할 수 있고, 수술 중 다양하게 변화하는 활력 징후를 조절하지 못하면 주요 장기의 손상이 발생할 수 있어 생명의 위험을 초래 할 수 있다.

2013년 통계에 의하면,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아닌 사람에 의해 시행된 연간 마취 건수는 전신마취 3만 6,008건(3%), 부위마취 14만 3,134건(19%), 정맥마취 9만 3,864건(47%)에 달했다.
마취통증의학회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의뢰된 마취 관련 의료사고를 분석한 결과, 92%의 환자에서 사망을 포함한 영구적 손상이 발생했고, 그 중 43%는 표준적인 마취 관리를 했다면 예방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시경이나 성형, 피부 시술 등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정맥마취 관련해서 사망, 영구장애 후유증을 유발한 의료사고의 경우 비마취통증의학과 의사에 의해 마취가 시행된 비율이 92.3%에 달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부산의 대리수술에 의한 뇌사 사건과, 2021년 간호사의 대리마취에 의한 산모사망 사건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아닌 의료인에 의해 마취가 행해졌다.

학회 박성진 홍보이사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아닌 의료인에 의해 마취가 많이 시행되는 것은 비현실적인 건강보험요양급여 수가 체계가 원인이다.”라며, 마취 관련 수가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2016년 보고된 ‘원가계산시스템 적정성 검토 및 활용도 제고방안 2단계’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마취료의 원가 보전율은 72.7%에 불과하고 집계가 불가능한 병원의 인적, 물적 투입을 고려하면 실제 마취 수가는 원가 대비 5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박 이사의 설명이다.

즉,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고용에 의한 의료 행위는 적자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박 이사는 “또한 건강보험요양급여에서는 수술을 하는 집도의가 마취의를 고용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동시에 마취를 시행하더라도, 환자의 안전을 위해 마취를 시행하는 의사를 고용해 개별적으로 마취를 시행한 경우와 동일한 마취수가가 지급된다.”라며, “국내 의료법에서는 의사는 모든 의료행위를 시행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 제한이 없는 상황이라도 타과 전문의가 해당과의 진료행위를 시행할 경우 주의의무를 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 이사는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 수술을 진행하면서, 실시간으로 환자의 활력징후를 확인하고 다양한 관리를 시행해야 하는 마취를 동시에 시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환자 안전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박 이사는 “신포괄수가제의 경우, 마취료가 별도로 산정되지 않아, 마취의와 회복실 담당 간호사 등의 마취분야 인력 고용과 관련시설 투자를 더욱 위축시켜 환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투입되는 인력, 안전성에 현저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수가가 지급되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며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일부 의사는 간호사에게 마취를 지시하는 불법 행위를 하고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에 의한 마취행위와 동일한 마취수가를 받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 이사는 “2021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시행한 2차 마취 적정성 평가 결과 상급종합병원 97.4점, 종합병원 88.5점, 전문병원(병원급 의료기관) 73.5점으로 1차 평가에 이어 여전히 차이를 보였다. 회복실 운영 비율이 상급종합병원은 100%인데 비해 종합병원 67.8%, 전문병원 55.4%에 불과했고 마취관련 약물의 안전 관리 활동 여부 역시 상급종합병원 100%인데 반해 종합병원 65.7%, 전문병원 62.5%에 불과했다.”라고 말했다.

박 이사는 “이는 경제적인 이유로 종합병원 이하의 병원에서는 환자가 마취 종료 후 회복실이 없어서 병실로 바로 이동되거나 수술실 간호사가 환자의 마취 회복까지 함께 담당하고, 마취약제에 관한 교육이 전무하는 등 마취 환자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양질의 마취관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그 기반이 부족한 실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마취 실명제 실시 ▲신포괄수가제 수술에 별도 마취료 산정 ▲전문의의 행위에 대한 차등 수가 지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는 “현 수가 제도는 환자안전을 위한 투자 및 고용을 방해하고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한다.”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마취실명제’가 시행돼야 하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마취를 전담으로 시행하는 경우 마취 수가의 차등급여를 적용함과 동시에 신포괄수가제가 적용되는 수술에서도 마취료는 별도로 산정되도록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마취실명제에 대해 박성용 보험이사는 “의무기록과 보험청구 시 마취를 시행한 의사의 의사면허번호를 반드시 기입하도록 하는 것이다.”라며, “환자의 알권리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연준흠 회장도 “현행 의료법상 의사라면 누구나 마취를 할 수 있다. 그것 자체를 막으려는 게 아니다.”라며, “환자 알권리 차원에서 누가 수술을 하고 마취를 하는지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설명의무법 때문에 누가 마취를 하는지 알려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학회는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 대책에 마취 영역을 포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보장을 위해 중증ᆞ응급, 분만, 소아진료 중심으로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마련해 보고했다.

주요 추진 과제는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해 중증 및 응급 환자가 지역 내 의료기관으로 즉시 이송되고, 해당의료기관에서 응급처치 및 검사 후 최종 수술까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이러한 체계가 작동 가능하도록 공공정책 수가를 도입해 야간ᆞ휴일 응급수술, 고난도ᆞ고위험 수술 등 업무부담이 큰 분야에 보상을 확대하고, 병원 간 협력에 대해서도 보상을 실시한다는 게 골자다.

또, 필수의료 분야의 근무 강도를 개선하고, 인력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지방병원과 필수과목에 전공의를 우선 배치하는 등 충분한 필수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박성진 이사는 “중증, 응급 환자가 검사 후 최종 수술까지 신속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마취 부문이 반드시 필요하며, 응급상황이 빈번히 발생하는 분만에서는 산모와 태아의 안전을 위해서도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의 존재는 필수불가결의 조건이지만, 병원급 의료기관의 과도한 당직과 고위험 수술, 소송의 위험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지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의 개원이 급증하면서 분만병원들부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중증의 응급수술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행되는 상황에 지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이 보수가 더 높고 주간 수술 위주의 근무여건이 좋은 병원으로 이직하거나, 통증클리닉을 개원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라며, “필수의료서비스를 담당하는 의료기관의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의 충분한 충원 및 근무 여건 개선이 이뤄지도록 중증, 응급 고난도 수술과 소아, 분만 분야의 마취수가의 정상화는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학회는 또, 장애인 진료를 위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준흠 회장은 “국내 장애인 인구는 2019년 현재 261만 8,000명명이고, 중증 장애인은 98만명에 달한다.”라며, “ 장애인 환자의 진료는 일반 환자와 달리 의사소통과 협조가 안되고 진료 및 치료 과정에 저항하거나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비장애인 환자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진료 인력 외에 환자를 붙잡기 위해 3-5명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연 회장은 “특히 중증장애인의 경우 간단한 충치 치료나 MRI 검사를 위해서도 전신마취나 그에 준하는 깊은 진정마취가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각 대학병원에서 장애인 구강 진료를 위해 운영 중인 장애인 구강진료센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현재 전국에서 16곳만 운영되고 있다.”라며, “진정이나 전신마취가 필요한 장애인 진료의 특성을 고려해 센터를 확대하고,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등의 의료인력을 우선적으로 충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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