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A한의사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내자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앞서 대법원은 22일 환자에게 초음파검사를 실시한 한의사의 의료법 위반죄를 인정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원심 파기환송했다.

A한의사는 B환자에게 2010년 3월 2일부터 2012년 6월 16일까지 총 68회 초음파를 시행하고 한약을 처방했다.

B씨는 한의원에서 치료가 되지 않자 2012년 7월초 산부인과의원을 찾았다. B씨는 덩어리가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라매병원을 방문해 조직검사를 한 결과 자궁내막암 2기 진단을 받았다.

검찰은 A한의사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했다며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이원적 의료체계의 목적,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의 개념,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진단방법의 차이, 초음파진단기의 원리 등에서 알 수 있는 사정에 비춰보면 B씨가 초음파진단기를 사용해 환자의 자궁, 자궁내막을 확인하는 행위는 한의사의 면허에 포함된 의료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라며 A 한의사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초음파진단기를 사용하는 검사 및 진단행위는 영상의학과의 전문과목이고, 영상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인체나 영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라며,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한의사가 진단 보조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하는 것은 보건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킨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며 무죄 취지로 판단하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의사단체들은 앞다퉈 성명을 내고 법과 원칙을 무너뜨린 판결이라며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대한내과의사회와 한국초음파학회는 23일 공동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대법원 스스로가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곳임을 자인한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나 초음파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한 진료행위에 대해 면허 범위 밖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판결을 내렸고, 이번 사건 2심 재판부가 인용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들도 뒤집는 판결이라는 것이다.

내과의사회와 초음파학회는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의학과 한의학을 구분하는 이원적 의료체계를 취하고 있고, 의료법에 의사와 한의사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으며, 그 역할과 임무, 면허 범위에 관한 규정 및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절대 할 수 없다.”라며, “이를 위반한 자에게 형사처벌 하도록 명시돼 있다.”라고 상기시켰다.

내과의사회와 초음파학회는 “의사와 한의사는 인체와 질병을 보는 관점 및 그 진단 방법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는데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한의사가 의학적 진단 의료기기를 아무런 제한 없이 사용한다면 의료체계는 붕괴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라며, “한의사들에게 위법적인 의료행위를 하도록 절대로 허용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대법원 한의사 초음파사용 의료법 위반 판결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정형외과의사회는 “누가 이 환자를 2년동안 고생시키고 증상이 악화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고 묻고, “진단을 하지도 못한 초음파기기를 이용해 환자를 붙잡아 두고 사실상 병을 키운 해당 한의사가 책임을 지고 법적처벌을 달게 받으며 반성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정형외과의사회는 “이원화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의료행위는 곧 커다란 혼란과 쓸데없는 논란과 다툼, 불필요한 국민 비용의 낭비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라며, “한의사들이 법원의 판결을 빌려 의과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등 면허범위를 넘어서는 무면허의료행위를 지속적으로 시도하면, 모든 의료인의 이름으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라고 경고했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도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무죄 취지 판결은 국민 건강에 심각한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의원회는 “대법원의 판결대로라면 의료법에 따른 면허에 구분 없이 의료인 누구든지 위해하지 않은 진단기기의 사용과 이를 근거로 한 의료 행위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라며, “이런 결정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지탱해야 할 책무가 있는 대법원의 판단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반발했다.

대의원회는 “이번 결정으로 이원적인 의료 체계의 극심한 혼란과 왜곡이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에 큰 피해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이번 판결을 한 재판부의 몫이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초음파 진단기기를 통한 진단은 영상 현출과 판독이 일체화돼 있어 검사자의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로서, 단지 초음파가 인체에 무해하므로 초음파 진단기기가 안전하다는 것은 극히 단편적이고 비전문적인 시각이다.”라며, “위와 같은 진단과 판독의 일체성 때문에 초음파 진단기기를 잘못 사용할 경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의협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포기한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향후 발생할 현장의 혼란, 국민보건상의 위해 발생 가능성, 그로 인한 국민의 피해에 대해 의료계는 극도의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번 판결로 인해 발생하게 될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피해는 온전히 대법원이 책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판결 직후 성명을 낸 대전시의사회는 “전국적으로 필수의료가 붕괴돼 대학병원에서도 소아과 응급실과 병동을 폐쇄하고 있는 와중에 의료체계를 무너트릴 수 있는 중대한 판단이다.”라며, “정부와 법원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은 진료체계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며 필수의료를 포함한 일차 의료의 급격한 파멸을 가져와 국민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과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재판부의 판결에 항의해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임현택 회장은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걸 판결의 근거로 삼는게 아니라, 사용해도 된다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걸 근거로 판결해야 마땅한 것은 초등학생도 알수 있는 일이다.”라며, “판결 수준은 수 없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는 남미나 아프리카 후진국의 판사들이나 할 법한 판결이다.”라고 주장했다.

임 회장은 “한의사들에게 초음파 검사를 받고 믿기지 않는 분들은 소청과의사회로 연락하면 검증해서 알려주는 캠페인을 진행하겠다.”라며, “사례들을 모아서 국민 앞에 발표해 이번 판결이 국민 건강을 망치는 판결인지 증명하겠다.”라고 밝혔다.

박명하 회장도 “현대의 진단용 의료기기가 한의사 아닌 의사만 독점적으로 의료행위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언급은 한의사들이 그동안 주장해왔던 내용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라며, “그동안 헌법재판소 및 법원의 수많은 판례를 뒤집어가면서까지 국민의 건강과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내린 이번 판결의 후폭풍이 두렵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번 판결에 가장 큰 피해자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들이다.”라며, “이러한 판결로 인해 발생하는 국민적 위해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법원이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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