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의 분원 경쟁에 의료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의사단체들이 잇따라 성명을 내고 대학병원의 분원ㆍ증설 철회를 요구하고 있고, 의사협회도 정부의 실효성있는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대한병원장협의회는 12일 성명을 내고, 대학병원의 분원 설립이 의료를 황폐화시킬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협의회는 “소비가 공급을 촉진하는 경제 원리에 반하는 대표적인 영역이 의료이다.”라며, “만들어진 병상은 반드시 채워지며, 만드는데 비용이 많이 필요한 대학병원의 병실은 병상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비용 소비적으로 채워지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치료와 검진을 위해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의 속성상 대형병원은 더 많은 검사를 요구하며 환자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는 보험재정을 고갈을 촉진하고, MRI를 포함한 여러 비급여 검사는 의원이나 중소병원에 비해 더 비싸기 때문에 개인 의료비 지출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대학병원의 확장 경쟁은 중소병원과 의원급 의료 기관의 몰락을 의미하며, 결국 의료 전달체계의 근간을 흔들어 보건의료 시스템을 황폐화시킬 것이다.”라며, “플랑크톤과 미생물이 없는 생태계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의원급 의료기관과 중소병원이라는 먹이 사슬이 끊어진 대학병원은 존재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보건복지부를 향해서도 날선 비판을 가했다.

협의회는 “대학병원들의 분원 경쟁은 의료 환경이 가장 양호한 수도권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도서(島嶼) 지역에 분원을 건립한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정부와 보건복지부는 지역간 의료 격차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대형병원 분원 설립이 수도권 중심으로 이어진데 따른 지적이다.

협의회는 “대학병원의 분원 경쟁은 의료라는 생태계 피라미드를 뒤집어 최상층을 두텁게 하는 것으로 의료라는 시장을 유지할 수 없게 하는 원인이 된다.”라며, “선의로 가득 찬 미래가 지옥이라는 현실이 돼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온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에 관료들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협의회는 “의료의 실패란 비용의 문제가 아닌 환자의 생사 문제로 의료전달체계의 교란에서 시작된다.”라며, “기대와 현실의 불일치를 제거하기 위해 정책을 조율하지 않으면 의료비 앙등과 의료 생태계 파괴는 필연적이고 그 책임은 정부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대한개원의협의회도 9일 성명을 내고 대학병원의 분원 경쟁을 비판했다.

대개협은 “시설과 인력, 브랜드와 자본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대학병원 분원과 지역 의료기관은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라며, “유명 대학병원의 분원 개설은 지역 의료 생태계를 황폐화시킨다.”라고 지적했다.

대개협은 “일차적으로 지역 의료 수요를 깔때기처럼 빨아들여 코로나 이후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의 의원급 의료기관과 중소병원의 경영난을 가중시킬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의료인력이 분원으로 편중돼 기존의 지역을 담당하는 병의원의 몰락이 가속화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대개협은 “한 번 망가진 의료 인프라는 빠른 시간 내에 회복이 어렵다.”라며, “대학병원이 중증 진료와 교육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외래를 제한하고, 대형병원의 병상 수를 지역별로 제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도 지난달 열린 제39차 의협 온라인 종합학술대회에서 대학병원의 분원 설립 계획에 문제를 제기했다.

우 소장은 “상급종합병원 허가병상당 연간 매출은 2015년 2억 1,000만원에서 2019년 3억 3,400만원으로 59.1% 증가했고, 같은 기간 종합병원 매출도 8,910만원에서 1억 3,600만원으로 52.6% 급증한 반면, 병원급과 요양병원 병상 매출은 제자리걸음이다.”라며, “한국 급성기 병상은 이미 공급 과잉 상태이며 수도권 대학병원의 분원 설립 계획은 지역의료 붕괴와 지방 소멸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대한의사협회도 대학병원의 분원 설립을 심각한 문제로 인지하고, 성명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의협은 성명에서 무분별한 특정지역의 병상 수 증가는 많은 문제를 야기시켜 결국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의료기관의 병상 수급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관리감독 하에 우리나라 전체 의료시장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관점에서 수급이 결정돼야 하며, 변칙적인 병상 수 증가가 이뤄지지 못하도록 관련 법령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수현 의협 대변인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학병원 분원 설립은 의료 생태계를 파괴하고 환자 쏠림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어 계속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중증환자, 희귀환자 진료보다 경증환자 진료가 더 많고, 대학병원으로서의 역할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분원 설립은 막아야 한다.”라며, “분원 설립은 의료인력 이동, 환자 쏠림 등이 발생해 지역간의 의료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의원급 및 중소병원급 의료기관은 도산하게 될 것이며 이는 결국 일차의료를 죽이고 종합병원만 남는 기형적 의료전달체계가 초래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서울대를 위시한 울산대, 연세대, 고려대, 경희대, 아주대, 한양대, 인하대, 중앙대 등 굴지의 대학병원이 앞다퉈 분원을 준비하고 있다.

병원마다 500~800병상 규모로, 모두 6,000여 병상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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