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중심의료가 강조되고 있지만 보건의료서비스 영역에서 환자는 주체가 아닌 대상이다. 또, 환자의 권리를 규정한 법률들이 환자의 권익증진보다 사회적 이슈의 재발방지 목적으로 규정돼 체계적인 법률이 필요하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대표 안기종)는 6일 서울여성플라자 1층 국제회의장에서 환자기본법(환자의 투병 및 권익 증진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입법토론회를 개최했다.

안기종 대표는 주제발표를 통해 다양한 법률에서 규정된 환자의 권리를 언급하며 체계적인 환자기본법의 제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먼저, 안 대표는 보건의료기본법과 관련해 “현재 보건의료기본법 등 법률에 규정된 환자의 권리가 규정돼 있지만, 환자가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도록 하는데 한계가 있다.”라며, “환자의 투병 및 권역 증진과 관련해 제ㆍ개정된 법률 규정을 모두 포함하고, 법률로 규정돼 있지 않지만 헌법에 근거한 환자의 권리까지 모두 포함한 성격의 법률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소비자기본법과 관련해 “환자는 의료소비자이기 때문에 소비자기본법에 규정된 소비자의 권리에 근거해 환자의 투병 및 권익 증진 관련 요구나 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보호법은 자유시장경제에서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라며, “환자와 보건의료인ㆍ보건의료기관 사이의 관계는 보건의료인이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기본법이 포섭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환자 관련 제ㆍ개정된 법률의 분산된 입법 행태를 지적했다.

안 대표는 “환자 관련 제정된 법률인 의료분쟁조정법, 환자안전법, 연명의료결정법, 재난적의료비지원법 등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발생한 후 재발 방지 대책 차원에서 각개전투식 입법 과정을 거쳐 제정됐다.”라고 지적했다.

의료분쟁조정법의 경우 의료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제정됐고, 환자안전법은 환자안전사고가 문제되자 제정됐으며, 존엄사 논란으로 제정된 연염의료결정법, 메디컬 푸어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재난적의료비지원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환자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으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법률제정 외에 ▲환자단체 정의 규정 등에 법정위원회 참여 확대 ▲환자단체 육성ㆍ발전 및 지원의 법적 근거 마련 ▲환자정책종합계획 수립ㆍ시행의 법적 근거마련 ▲환자정책ㆍ입법의 근거 창출을 위한 환자연구소 설치ㆍ운영 ▲환자투병지원센터 설치ㆍ운영 ▲환자의 날 기념일 지정 등을 제시했다.

토론자로 나선 박성민 HnL법률사무소 변호사도 “기존 법률이나 윤리 규정 등은 환자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다루고 있다. 환자 권리 규정들이 분산돼 있고 전체적인 환자 정책 목표나 방향 제시가 없다.”라며, 환자기본법의 제정 필요성에 공감했다.

특히 박 변호사는 환자의 알권리를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환자가 잘 아는 상황에서 자유롭게 결정하고, 피해를 입으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게 환자권리의 요체다. 그러나 의료법 시행규칙을 보면 설명을 들을 권리만 정해져 있어, 일부만 규정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보건의료기본법을 보면, 정부 정책에 대해 정보를 받을 권리가 규정돼 있다. 환자의 알권리는 보건의료인으로부터 설명을 들을 권리 외에, 다른 정보원으로부터 정보를 얻을 권리, 자신의 의료데이터를 얻을 권리, 투병 및 권익 증진에 영향을 주는 정부 정책의 공개를 청구하고 그 내용을 이해할 권리를 규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환자가 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박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보건의료서비스나 보건의료 재화는 시장이 아니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 따라 상대방, 장소, 가격 및 거래조건이 결정돼 환자는 일반적인 소비자의 권리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또, 정부에서 신의료기술평가로 인정하지 않은 의료행위를 선택할 수도 없고, 정부가 정한 의료수가에 따라 의료행위 가격이 결정된다.”라며, “환자가 이용하는 보건의료서비스나 보건의료 재화의 가격ㆍ거래조건 등을 결정하는 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도 보건의료시스템이 공급자와 전문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윤 교수는 “병원에 가면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환자를 얼마나 진료하는가 효율에 집중하고 있다. 환자가 보건의료서비스 영역에서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라는 지적에 공감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만, 환자기본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이 거대한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라며, “전체를 관통하는 정책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환경영향평가는 모든 정부 정책이 평가를 받게 한다. 환경적 측면에서 정책적 참여가 가능하다. 기존 제도나 기존 정책을 들여다보고 영향을 줄수 있는 기전이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좌장으로 토론회를 이끈 권오승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마무리 발언을 통해 “환자기본법의 기본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로 의미있는 첫걸음이었다.”라면서도 “환자의 권리만 강조되고 있는데 책무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또, 환자의 권리가 실현되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구체적인 규정도 있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그는 “환자 단체 관련 사항을 많이 이야기한 것 같다. 환자에 초첨을 맞춰야 한다. 무엇보다 법을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인식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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