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소장 폐색환자의 수술을 늦게 했다는 이유로 의사에게 업무상 과실치상죄를 인정한 데 대해 의료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소장 폐색환자의 수술을 늦게 한 외과의사에게 업무상 과실치상죄를 인정해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했다.

54세 여성 A 씨는 2017년 11월 복통으로 B 병원 응급실에 내원해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으나, 이후 통증이 가라앉아 내과를 거쳐 외과로 전과됐다.

외과의사 C 씨는 장 폐색을 의심했으나, 통증이 호전된데다 6개월 전 개복수술을 받은 과거력이 있어 보존적 치료를 결정했다. 환자도 경제적인 사정 등을 이유로 수술보다는 보존적 치료를 원했다.

보존적 치료를 시행한 초기엔 호전됐으나 7일째 심한 복통과 전신부종ㆍ호흡 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외과의사 C 씨는 응급수술을 시행해 괴사된 소장 80cm 정도를 절제했으나, 괴사된 소장에 발생한 천공으로 인해 패혈증과 복막염 등이 발생했고 A 씨는 2차 수술을 받았다.

검찰은 외과의사 C 씨를 업무상 과실치상죄로 기소했고, 법원은 피해자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수술보다는 보존적 치료를 원했다고 해도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치료방법인 수술을 결정하고 이를 피해자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며 수술 지연에 대한 과실을 인정했다.

법원은 "피고인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가볍지 않고, 그로 인하여 피해자에게 상당히 중한 상해가 발생하였다"는 이유로,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했다.

의사협회는 23일 입장문을 내고, 법원의 판결에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의협은 “해당사건의 외과 전문의는 2017년 갑작스런 복통으로 병원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를 진찰한 후 장폐색이 의심되지만 환자의 통증이 호전되고 있고 6개월 전 난소 종양으로 인해 개복수술을 받은 과거력이 있음을 감안해 우선 보존적 치료가 적절하다고 의학적 판단을 내렸으나, 7일 후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응급수술을 시행하여 소장을 절제하였고, 환자는 괴사된 소장에 발생한 천공으로 인해 패혈증과 복막염 등이 발생해 2차 수술을 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의협은 “아직까지 수술 여부 및 그 시기 결정에 있어 명확한 임상 지침이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그것은 연구와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직접 환자를 진찰한 의사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종합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으므로 현장의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학적 원칙이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진료한 의사의 결정은 존중돼야 하며, 이후 발생한 악결과를 이유로 당시 의학적 판단의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이 사건만 국한해 보더라도, 환자와 의사가 모두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수술에 앞서 보존적 치료를 우선 시행해보기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법원이 사후에 그 악결과만을 문제 삼아 의사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것은 지나치다.”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환자의 치료방법 선택에 대한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부정되고 추후 환자의 상태 악화에 대해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 모든 의사가 방어진료를 하게 돼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라고 우려했다.

의협은 “현재에도 외과 등 필수의료과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화돼 의료공백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경시하고 법의 잣대만을 들이대는 판결이 반복되면, 우리나라의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체계의 붕괴는 더 가속화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의료분쟁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의협은 “의료분쟁으로 입은 국민의 피해를 신속하게 보상하고 의료인에게 안정적 진료환경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더욱 튼튼하게 보호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가칭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에 즉시 나서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대한외과의사회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의료과실의 문제를 일반적 범죄행위와 동일한 선상에서 일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라고 밝혔다.

외과의사회는 “의료행위 도중 불가피하게 상해와 유사한 인체 침습행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행위는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기에 지연도 발생할 수 있다.”라고 상기시켰다.

외과의사회는 “특히 복강 내에 발생한 출혈이나 천공, 장유착과 같은 합병증은 일반적인 검사 방법으로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라며, “의학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이를 빠르게 해결하지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당시 상황을 외과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장 폐색을 의심하기는 했지만, 응급수술을 필요로 하는 상태로 판단하지 않은 여러 변화와 증상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외과의사회는 “환자의 상태를 다소 늦게 지연 진단했다는 이유로 형사상 주의위반에 해당하는 의료 과오로 판단하고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해 의사를 단죄하면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라며, “의사들이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방어적인 방법에만 집중할 것이고, 조금만 의심되더라도 최후의 수단인 개복수술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외과의사회는 산부인과에서 산모를 위해 제왕절개를 선택하지 않거나 지연 선택을 한 탓에 산모와 아이에게 이상이 발생했다는 법원의 판단 이후 의료현장에서는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비율이 급격하게 늘었고, 또 약물치료나 간단한 수술 전에 일상적인 혈액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의료과실이라는 법원의 판단 이후에는 모든 환자에게 혈액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의료현장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예를 들었다.

외과의사회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일률적으로 의료인의 과실 유무를 따져 형사처벌하는 문화, 검찰ㆍ경찰의 강압적인 수사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 지속적인 교육, 동료 평가로 통해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재발방지 방안 마련 등에 집중하는 것이 국민의 건강을 두텁게 보호하는 방법이다.”라며, “즉 정상적인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형법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했다.

외과의사회는 “사법부가 의료행위에 형사적 제재가 필요한 의료과실이라는 사법적인 판단을 함에 있어서는 사법부의 종합적이고 신중하고 명백한 증거에 근거한 지혜로운 판결이 내려져야 하며 그것이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에서 위태로운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고 또한 의료인에게도 절실하다.”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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